동업 또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일

공사 구분.

입에 담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이다. 특히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과 일을 함께 하게 되면 이 원칙 또는 기준을 준수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이 잘 안 될 때 서로 책임을 묻기가 쉽다.
  2. 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 자기 체면을 지키느라 상대를 공격하기 쉽다.

따라서, 성공적인 동업(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것 포함)이 되기 위해서는 위 둘을 피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일의 결과가 좋아야 하고, 둘의 직장 내 관계 구도가 공적으로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결국은 전부 공사 구분이 된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 이게 말장난일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부분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일할 때는 공적인 상대로 대한다. 감정을 섞지 않도록 노력한다. 함부로 말하는 것을 주의한다.

신뢰의 속도

최초 3~6개월 정도의 평판 또는 신뢰에 따라 직장생활 난이도가 달라진다.

  1. 일의 착수 : 신뢰 받는 사람은 더 중요한 일을 맡는다. 더 중요한 일 = 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2. 결재 :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으면 결재 처리 기간이 짧고, 반대라면 길다. 결재 시간을 줄이는 것은 결재 받을 일이 많을수록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3. 존중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상에서 존중을 받는 것과 못 받는 것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신뢰 받기 위해선

  1. 근태 및 약속 준수 : 모든 일의 기본.
  2. 일 및 물품 정리 : 일도, 물품도 항상 정리해야 하고 정리된 상태여야 한다.
  3. 빠른 피드백 : 중요도에 따라 순서는 달라지겠지만, 일 관련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빠른 피드백을 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빠른 피드백 = 업무 능력이 되기도 한다.
  4. 시작한 일 끝마치기(Grit) : 한 번 시작한 일은 놓치지 않고 처리해야 한다. 한 번에 열 가지가 넘는 일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진행하다보면 어떤 일은 놓치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없으려면 한 번 시작한 일은 끝낼 때까지 놓지 않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결국 일을 제때 필요한 수준에서 처리하는 것이 신뢰를 얻는 기본이라 볼 수 있다.

메시지의 명확성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조건.

상대방이 듣기에 내가 던지는 말이 발성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상대방이 듣기에’ 이고, 이 상대방에는 청자 모두를 포함이다. 그 중에 못 알아듣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1. 화자의 의도를 해석하느라 나머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한다.
  2. 메시지 핑퐁의 속도가 느려 의사결정 속도 및 실행 속도를 지연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이의 ‘상수’일 가능성이 크므로, 이걸 근무하는 내내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론은 이것이다. 내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무조건, 지금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그리고 동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빨리 고치라고 하거나 얼른 내보내야 한다.

노력 안 하는 사람

이제야 알았다.

나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뭐 순간의 노력이야 다 하는 거지. 도파민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그건 동물도 하는 거니까.

그리고 사랑이나 섹스, 또는 재밌는 것, 영화나 스포츠 등을 위해 순간적으로 노력하는 경우는 많았다. 그런데.. 그게 노력일까.

이유야 모르겠지만, 현재의 내 머릿속의 노력은 다음과 같다.

Out of Comfort Zone 에 있는 것.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것. 그걸 지속하여 건강한 노력-보상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게 노력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노력이란 걸 제대로 안 하고 살았다. 일단 나는 늘 Comfort Zone 에 있고자 한다. 본능에 충실하다면 충실한 것인데, 다르게 보면 짐승의 삶이다. 지 편한 것만 하려고 하네 –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그걸 벗어나려고 애도 많이 썼다. 그런데 잘 안 되었다. 이해가 안 되면, 애를 써야 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게 중요한데 그건 대부분 깨달음으로 다가오더라.

이제 노력이 뭔지, 그리고 노력-보상 시스템이 중요한지 ‘이해’했으니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내 본질은 건드리는 변화라 생각한다. 깨달은대로 지속적으로 실천한다면.

회사에서 누군가의 ‘수동적 공격성’ 발현의 의미

최근 회사 생활하면서 큰 위기에 빠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큰 노력을 기울이고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내 노력과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졌다. 의식적으로 그리 생각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그랬다. 그러다보니 내가 모르는 새에 나는 수동적인 공격성을 갖춘 채 누가 나를 무시하면 그것을 참다가 터뜨리는 잘못된 대응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진 나날들을 보내던 중,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내 스스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진심으로 일하고 있는가?” 직원을 착취하는 회사나 상사의 마음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정답은 “No”였다. 나는 되는대로 살고 있었고, 머릿속 목표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추구하진 않았다. 감정과 이성의 동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산다 생각하고 살았지만, 마음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한다 생각했지만, 실제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나는 몰라도 타인의 눈에는 명백히 보인다. 그러면 일을 대충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일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타인도 내게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모두가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내가 수동적 공격성 상태에 있다고 느끼면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아, 내가 일을 진심으로 하고 있지 않구나.”

개인의 행복 추구가 중요하고 일한 만큼 받는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내 최근 상태와 주변 환경에 대해 느낀 점을 적어봤다.

컴맹의 윈도우, 맥, 그리고 pCloud 사용기

나는 컴맹이다. 컴퓨터를 아예 못 다루는 건 아닌데, 그래도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컴맹처럼 느낀다. 사실 하드 포맷과 윈도우 재설치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부분을 만나면 패닉에 빠진다.

나는 현재 윈도우와 맥을 함께 사용 중이다. 사실 맥은 아이폰을 사용하는 용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맥OS를 사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맥에서 iOS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윈도우를 어설프게 사용하고 있다 이 정도가 나의 컴퓨팅 능력의 정의가 될 것이다.

나는 회사의 PC, 집의 PC, 서피스 pro, 맥 미니, 그리고 맥북 프로를 사용 중이다. 컴퓨터도 잘 못하면서 참 많이도 샀다. 회사 컴퓨터에 내 메인 자료가 있고, 어디서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클라우드는 필수가 된다. 처음엔 드랍박스를 쓰다 용량이 적어서, 결국 네이버 마이박스로 넘어갔고, 그러다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pCloud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Lifetime Plan.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한 번 사면 평생 쓴다. 뭔가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기분이다. 믿을 수 있는 클라우드를 넉넉한 용량으로 구매해 평생 쓸 수 있다면 어떤 컴퓨터를 들고 다녀도 파일을 열어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정감이란.. 요즘 시대엔 새로운 집 같은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호기롭게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할인으로 pCloud 5TB Lifetime Plan + 암호화 옵션을 70만원이 넘는 금액을 주고 구입했다. 사실 클라우드에 한 번에 쓰기엔 작지 않은 돈이다.

그리고 기분 좋게 회사에 있는 주요 폴더를 pCloud에 백업 걸어버렸다. 아주 편안하다. 나는 이제 집에서도, 여행 가서도 회사에서처럼 작업할 수 있다.

그런데 행복한 시기는 얼마 가지 않았다. 윈도우와 맥을 번걸아 쓰다 보니.. 유니코드 호환이니 뭐니 안 맞는다며, 맥에서 동기화할 때마다 윈도우에 보이는 모든 한국어 파일명의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어 버렸다. 나는 그래도 이 평생 플랜, 기분 좋게 구입했는데 잘 써야지 하며 챗 gpt로 파이썬을 돌려가며 매일 같이 분리된 자음 모음을 합치고, 또 합치고.. 쓸데없는 짓을 컴퓨터를 켤 때마다 했다.

당연히 pCloud 측에도 문의했지만.. 여러 번 질의 오간 내용은 큰 의미는 없었고 나는 결국 환불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MS Onedrive를 쓰다가, 현재는 구글 드라이브를 쓰는 중이다. 둘 다 운 좋게 무료로 써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pCloud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암튼 결론은.. 내가 세팅을 잘못 해서 윈도우와 맥을 오가는 파일명이 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 다 쓴다면 pCloud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는 100만원을 주고서라도 다시 Lifeplan의 평화로움에 뛰어들 것이다.

부끄러움 수치심 체면

가장 쓸데없는 것 세 가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명한 말이 있지만 그 의미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충분한 감정적 지불을 할 줄 알아야 한다이지, 실제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라 본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체면을 중시하는 것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남 앞에서 쪽팔리기 싫은 두려움, 무시 당하기 싫은 두려움, 그룹 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싫은 두려움 등.

나는 이 마음들을 온전히 버려야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수해도 당당한 태도가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남들 앞에서 주눅 드는 것보다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좋다고 본다.

누가 실수나 잘못을 하고 뭘 잘 몰랐을 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길 할 때가 있다. “저 나이 되도록 뭐했냐.” 그런데, 우리는 꽤 많이 볼 수 있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람들은 특정 부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아이들이나 하는 실수를 할 때도 많다. 누구나 다 그러고 산다는 것이다. 실수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는 그저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머지는 전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실수하고 사과하고 주눅 드는 것보다 실수해도 뻔뻔하고 당당한 게 낫다. 나 자신만 바라보면 이번 실수를 그저 다음 번에 반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타인의 평가 같은 건 일시적인 것이다. 결국 잘하면 바뀐다. 그러니 본질도 아니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충성 경쟁

나는 충성 경쟁에서 밀려나 있다. 이제 와서 나는 그런 데 관심 없다 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나도 대표한테 인정 받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정말 인정 받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밀려난 데 대한 반발심 때문인 점도 섞여 있겠지만 나와 사고체계가 너무 다른 사람이고,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라서 뭐 딱히..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말했듯이 아예 관심 없다는 아닌 것이, 대표의 평가는 내 직장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인정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주류’에서 탈락해 있다 보니 주류에서 충성 경쟁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사실 그걸 보면 눈꼴 시러워진다. 나는 밀려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은 누구나 다 아름답지가 못하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런 마음이 아니라, 권력에 굴복한 모습이기 때문일까.

이런 다짐을 하고 싶다. 앞으로 내가 다시 그 무대에 끼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충성하려 애쓰지 말자고. 그리고 나답게, 내 삶을 살자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이제 그렇게 사는 건 좀 추한 것 같으니까.